신앙 칼럼

[2020.01.05] 회개와 용서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적용

작성일
2020-01-0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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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4)


사람이 그가 가진 지식을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지식이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합니다. 지식이 폐단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무지는 더 큰 폐단을 초래합니다. 무지에 못지않게 유해한 것이 오해입니다. 가장 나쁘고 해로운 무지와 오해는 성경말씀에 대한 무지와 오해입니다. 구원에 관련된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회개와 용서는 구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서 폐단을 초래합니다.

첫째,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 체험되어야 하는 회개와 용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회개는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하였습니다. 흉악한 강도가 회개하여 즉시 구원을 얻게 되는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장면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 얼마나 풍성하며 또한 단순 명료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눅 23:39∼43) 두 명의 강도가 한 말은 몇 마디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각자의 심중에 가진 생각이 확실하게 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두 사람의 영혼은 각기 다른 세계로 갔습니다. 한 강도는 음부로 갔고, 죽기 직전에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한 다른 한 강도는 낙원으로 갔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진리는 회개와 용서가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죄인이 회개할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절망적인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이심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구원을 얻게 하는 회개입니다.

둘째, 자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의 회개와 용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그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여라” 하였습니다. 숫자로 한정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하면 무제한으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가혹하게 다룬 이야기로 교훈해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살게 될 사람은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용서 받은 것을 생각하면 용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의 악행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그런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합니다. 교인이 교회에 해를 입히는 일을 하는 경우에 적용해야 하는 지침이 마태복음 1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8:15∼17).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에 적용해야 할 지침이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눅 17:3,4) 인간관계에서의 용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고 피해자는 용서를 구하는 자를 너그럽게 용서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피해자가 용납한다면 그로써 종결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끼친 고통과 손실에 대해 힘써 보상을 해야 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대속의 은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옥형벌을 받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회개할 기회나 용서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는 때가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는 회개를 한 사람은 용서 받은 기쁨과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경대로 회개하고 용서하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게 됩니다. 이는 회개하는 사람과 용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