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2024.03.17]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과 생명과 행복

작성일
2024-03-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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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롬 6:3∼1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인간은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오직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그 대답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영생을 얻으려면 죽어야 합니다.

오늘날 특히 생명과학의 발전은 젊음의 유지와 수명 연장에 낭보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연구와 개발이 사람에게 젊음의 유지와 수명 연장의 꿈을 상당히 이루어지게 했을 경우에 과연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는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는 날이 갈수록 오염되고 자원은 고갈되어 갑니다. 이러한 곳에서 만약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하면 결코 유쾌한 삶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여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건강과 젊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약속하는 장생불사(長生不死)란 지상의 삶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영화롭고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영생입니다. 이러한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는 죽음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는 이 놀랍고 신비로운 체험이 없이는 변화된 몸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길은 결코 없습니다.

둘째로,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잘 사는 자가 되려면 죽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명성이나 지위나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 되도록 하는 필수 요건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잘 사는 자가 되려면 먼저 성도답게, 의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옛 사람의 성품이 죽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옛 사람의 성품이 죽고 성도다운 행실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 로마서 6장 10절, 1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때 율법에 대해서 죽고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반응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죄에 대하여 반응이 없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면 성령의 인도를 좇게 되어 육체의 소욕은 죽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둘째,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욕심과 뜻대로 살았으나 이제는 자신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셔서 주장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실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과 삶을 알지 못하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죽어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고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죽어야 행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의 성품이 죽고 자아가 죽어야 신령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