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2020.01.26]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

작성일
2020-01-26 23:51
조회
2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새로운 피조물’ 또는 ‘새것’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난 사람’ 또는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새로운 피조물, 거듭난 사람이라는 명칭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체험하는 신분과 존재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성령께서 관여하십니다.

첫째로,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경험하게 되는 본질상의 변화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하고, 거듭나려면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은 육신의 생명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생명이며 영생입니다. 예수께서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물은 정결케 하는 것과 세례를 의미합니다. 죄 씻음은 사람의 행위로는 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보혈의 은총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여주십니다.

둘째로, 거듭남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일회성(一回性)의 영적 변화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의 ‘거듭나게 하사’의 원어 ‘아나겐네사스’는 부정 과거분사로서 거듭남이 반복되지 않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의 예배를 정당한 예배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간 성막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제사법대로 제물을 드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 마음을 품고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경배하였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마음으로는 우상을 동경하고 섬겼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고 심지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 숭배의 처소인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한때 열심히 예배에 참예하더니 어느 날 교회를 등지고 세상으로 가버린 자가 있습니다. 한때 열심히 교회에 다니더니 이단집단으로 가버린 자가 있습니다. 한때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하였는데 지금은 우상을 섬기는 자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교회를 잔해하고 그리스도인을 무참하게 처형하는 자를 용인하는 자들 편에 서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타락했다가 다시 회개하고 또 다시 거듭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전혀 타락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거듭난 사람이 타락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경고하는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히 6:4∼6, 10:26∼27) 거듭난 사람이 타락하였다가 다시 거듭나는 일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어떠한 유혹과 핍박과 고난과 시험이 닥쳐와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거듭난 자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감당하며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신비에 속한 일이므로 육신으로 감지할 수 없으나 거듭난 사람의 삶을 통하여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로서 하늘나라 소망이 가득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