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2022.12.11] 기도에 관한 왜곡된 개념과 주장

작성일
2022-12-1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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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8)


신앙 용어에 대한 그릇된 개념은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고 혼돈을 초래합니다. 기도에 관한 그릇된 개념도 막중한 피해를 가져옵니다. 기도에 관하여 왜곡된 개념으로 주장하는 논리를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므로 구태여 무엇을 달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6장 7,8절 말씀을 그들의 논리를 지지해주는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구하는 기도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금하신 것입니다. 믿음도 없이 단지 예배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 하는 기도, 간절한 마음이 없는 기도가 중언부언 기도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다음은, “성도는 세상 것을 얻으려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힘써 구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고, 경제적인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회생활에서 더 나은 위치에 이르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육신의 필요를 충족케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옳지 않은 기도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았고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 이상을 추구하다 보면 점점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심령이 둔하여지게 된다.”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일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을 돕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이 즐기고 호사하기 위하여 넉넉함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명하신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기 위하여 넉넉하기를 바라고 애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끝으로, “자신의 형편과 능력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기적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은 과도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탐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전을 크게 가지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금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분수에 맞게 일을 벌이고 무슨 일이든 형편에 맞추어 한 걸음씩 나아가되 이상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둘째, 크게 기대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바라던 대로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아무리 크고 많은 것을 구해도 하나님에게는 극히 미미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관한 왜곡된 주장들을 배격하고 성경적인 개념과 정의(定義)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기사를 행하여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즐거움이 날로 더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