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2022.11.27] 방언 말함을 인한 감사

작성일
2022-11-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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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고전 14:18,19)


고린도전서 14장은 전 장에 걸쳐서 방언에 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방언이 그만큼 성도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유익을 줍니다. 신약성경에서 방언에 관하여 처음 기록된 곳은 마가복음 16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며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은 현재형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표적이 항상 현재적으로 있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 받을 때 나타나는 표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첫 장면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세례 받는 장면입니다. 둘째 장면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세례 받는 장면입니다. 셋째 장면은, 사울이라고 불리는 청년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넷째 장면은,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 받는 장면입니다. 다섯 째 장면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성령 받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세례 받을 때의 현상, 성령 받는 다섯 장면에 나타난 표적을 정리하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 하나님을 높이는 것, 예언, 방언 다섯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방언만이 성령세례 받는 세 장면에 모두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바울의 경우에도 방언으로 추리할 수 있는 충분한 암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을 때 반드시 방언을 말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고린도전서 12장의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에 대한 기록 가운데서 방언의 은사는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은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록 순서가 그 중요성의 차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는 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방언은 이 세상 나라의 말이 아닙니다. 배워서 습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설혹 누가 흉내를 낸다고 하면 그것은 흉내에 불과할 뿐이지 방언의 은사를 받아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 기록에 보면 그가 배우지 아니한 외국어를 일시적으로 말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하여 그 사람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가 배우지 못한 외국어를 말한 것이지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 받은 120명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각각 그들이 태어난 곳의 말로 들었습니다. 이는 120문도가 각 나라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용하는 나라 말로 듣게 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방언을 말하면 유익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케 합니다.
둘째,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신앙을 향상시켜 줍니다.
셋째, 방언 통역이 있을 때에는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합니다.
넷째, 우리의 영이 기도와 찬미를 하는 수단이 됩니다.
다섯째, 우리의 심령이 상쾌함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한편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유의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방언으로 대표기도를 하거나, 방언으로 설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공중 예배에서 방언 말하는 것에 관하여 적절하고 합당한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자들이 자칫하면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예방하려고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바울 사도의 이러한 소원과 감사와 명령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하며 방언 말하는 유익을 한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